산티아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알베르게 | El Gato Loco와 Ave Fenix 이야기
산티아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알베르게 | El Gato Loco와 Ave Fenix 이야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수십 곳의 알베르게에서 잠을 잤습니다.
시설이 좋은 곳도 있었고, 깨끗한 곳도 있었고, 위치가 좋은 곳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알베르게를 떠올려보면 시설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프랑스길 780km를 걸으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두 곳의 알베르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 El Gato Loco
2026년 2월 15일.
이날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원래는 벨로라도(Belorado)에서 하루를 마무리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수기라 대부분의 알베르게가 문을 닫아 있었습니다.
"다음 마을까지만 가보자."
그렇게 걷기 시작했는데 다음 마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에서 출발해 El Gato Loco까지 30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야 했습니다.
이미 발에는 물집이 잡혀 있었고 컨디션도 좋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날 모였던 순례자들도 비슷한 상황이었을 겁니다.
El Gato Loco는 이름 그대로 고양이가 있는 알베르게였습니다.
문 앞에는 고양이들이 앉아 있었고,
실내에도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고양이들이 자연스럽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도착하자마자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날 저녁에는 모두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메뉴는 아주 소박했습니다.
전날 바비큐 파티에서 사용했던 양파를 푹 끓여 만든 걸쭉한 수프,
빵,
샐러드,
그리고 파스타.
고기 하나 없는 식사였지만 이상하게도 참 맛있었습니다.
아마 긴 하루를 걸어온 뒤 먹는 음식이라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날 함께했던 사람들도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인 노부부인 찰스 선배님과 스텔라 어머님,
현제 형,
스페인에서 온 아버지와 아들,
헝가리 출신 순례자,
그리고 호스트까지.
총 9명 정도가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특히 스페인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아버지는 방학이 되면 아들과 함께 순례길을 걷는다고 했습니다.
아들의 이름은 사이먼.
당시 14살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 아이는 정말 바르게 자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자가 함께 순례길을 걷는 모습 자체가 너무 낭만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식사 전에는 모두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왜 순례길을 걷고 있는지,
꿈이 무엇인지,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국적도 언어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였으니까요.
2. Ave Fenix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곳은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에 위치한 Ave Fenix입니다.
이곳은 시설만 놓고 보면 절대 최고의 알베르게는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겨울인데 난방이 부족했고,
충전할 콘센트도 많지 않았고,
시설 역시 현대적인 편은 아니었습니다.
위생이나 편의시설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솔직히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곳은 지금도 가장 다시 가보고 싶은 알베르게 중 하나입니다.
이날은 그렉(스노우맨)과 함께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친해진 가빈이와 준혁이형 부부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후 2시쯤 알베르게에 도착했습니다.
햇빛은 따뜻했고,
몸은 적당히 피곤했고,
풍경은 아름다웠습니다.
그 상태에서 마시는 맥주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땅콩을 안주 삼아 쉬고 있는데,
알베르게 직원분들이 자신들이 먹고 있던 멧돼지 고기를 나눠주셨습니다.
그 멧돼지 고기는 지금도 기억날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그날 오후 우리는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앉아서 이야기했습니다.
각자의 삶,
여행,
가족,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
그런 평범한 대화들이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저녁에는 모두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토마토와 치즈 샐러드,
병아리콩 스프, 시래기국 같은 스프
닭가슴살과 계란.
화려한 메뉴는 아니었지만 와인과 함께 먹으니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날도 식사 전 기도를 했습니다.
헤수스의 긴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솔직히 스페인어라 대부분 알아듣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왜 아직도 이곳들이 기억날까
생각해보면
El Gato Loco도,
Ave Fenix도,
시설만 놓고 보면 최고의 알베르게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찰스 선배님과 스텔라 어머님.
그렉.
가빈과 준혁형.
그리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수많은 순례자들.
결국 순례길은 숙소를 기억하는 여행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는 여행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다시 산티아고를 걷게 된다면,
저는 아마 Ave Fenix를 가장 먼저 찾아갈 것 같습니다.
난방이 부족해도,
충전이 불편해도,
그날의 햇빛과 맥주,
사람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아직도 제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2026년 2월 5일부터 3월 8일까지 산티아고 프랑스길을 완주했습니다. 이 글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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