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 TOP 5 | 780km를 걸으며 포기하고 싶었던 날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 TOP 5 | 780km를 걸으며 포기하고 싶었던 날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힘들지 않았어?"
솔직히 말하면 힘들었습니다.
780km를 걸으며 아름다운 풍경도 많이 봤고 좋은 사람들도 만났지만, 매일이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비를 맞으며 걷기도 했고, 물집 때문에 고생하기도 했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에 지쳐버린 날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2026년 겨울 프랑스길을 걸으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 TOP 5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5위. 폰세바돈의 추위와 눈길
폰세바돈은 철십자가(Cruz de Ferro)를 앞두고 있는 작은 산골 마을입니다.
풍경은 아름답지만 제가 갔던 2월 말은 정말 추웠습니다.
고도가 높다 보니 중간중간 눈이 녹지 않은 구간도 있었고,
눈이 녹은 곳은 진흙탕처럼 질퍽거렸습니다.
걷는 것도 쉽지 않았고,
오르막도 길었습니다.
하루 종일 오르막을 걸어야 하니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숙소 환경도 좋지 않았습니다.
마트도 거의 없었고,
밤에는 체감온도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정확한 기온은 기억나지 않지만 0~5도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바람과 습기까지 더해지니 훨씬 춥게 느껴졌습니다.
그날 밤은 이불을 덮고도 오들오들 떨면서 잠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4위. 아르수아에서 산티아고까지 40km
2026년 3월 8일.
마지막 날입니다.
저는 아르수아에 있는 Albergue Ultreia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새벽 4시 30분에 출발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일찍 도착하고 싶다."
아직 어두운 길을 헤드랜턴에 의지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점심이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몸에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다리는 무겁고,
발은 아프고,
배낭도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목적지까지 5km 정도 남았을 때부터는 힘이 다시 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만 더."
"곧 도착이다."
"이제 끝난다."
그 생각만으로도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3위. 오 세브레이로 오르막
많은 순례자들이 아름다운 구간으로 꼽는 곳.
바로 오 세브레이로입니다.
저도 풍경은 정말 좋았습니다.
문제는 올라갈 때였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
계속 이어지는 경사.
그리고 길 옆을 보면 낭떠러지 같은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배낭은 무겁고,
숨은 차오르고,
허벅지는 타들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올라가는 내내
"도대체 언제 끝나지?"
라는 생각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정상에 도착해 갈리시아 풍경을 봤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2위. El Gato Loco까지 걷게 된 날
이날은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원래는 벨로라도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비수기라 알베르게들이 문을 닫아 있었습니다.
"다음 마을까지만 가보자."
그런데 다음 마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또 걸었습니다.
그리고 또 걸었습니다.
그날은 이미 물집도 있었고 몸도 적응 중인 시기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거리를 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El Gato Loco에 도착했을 때의 안도감은 지금도 기억납니다.
순례길에서는 목적지보다 침대가 더 반가운 날도 있습니다.
그날이 딱 그런 날이었습니다.
1위. 나헤라 가던 날의 비바람
순례길 전체를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날을 꼽으라면 저는 이 날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태풍처럼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신발은 이미 젖어 있었습니다.
양말도 젖었습니다.
한 번 갈아신고,
또 갈아신고,
또 갈아신었습니다.
하루 동안 양말을 세 번 갈아신었던 기억이 납니다.
문제는 발이었습니다.
물집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였고,
젖은 발은 계속 마찰을 일으켰습니다.
걷는 내내
"와 이거 진짜 빡센데?"
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순례길이 결코 낭만만 있는 여행은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은 날이었습니다.
보너스. 레온행 기차를 탔던 이유
사실 TOP 5에는 넣지 않았지만 기억에 남는 순간이 하나 있습니다.
엘 부르고 라네로에 오후 3시쯤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계속 걸을 수도 있었지만 몸이 너무 지쳐 있었습니다.
숙소도 마땅치 않았고,
더 걸을 자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4시 50분 기차를 타고 레온으로 가자."
그리고 레온에서 이틀 동안 쉬었습니다.
돌아보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순례길은 경쟁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 상태를 인정하고 끝까지 걷는 것입니다.
힘들었기에 더 기억에 남는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름다운 풍경과 좋은 사람들만 기억나는 여행이 아닙니다.
비를 맞으며 걸었던 날,
물집 때문에 힘들었던 날,
추위에 떨었던 밤도 함께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면 힘들었던 기억마저 좋은 추억으로 바뀝니다.
아마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를 다시 찾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힘들었지만 끝까지 걸었고,
그 끝에서 얻은 성취감은 지금도 제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경험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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