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키지리오지에서 다카하라까지 첫 오르막 | 쿠마노 고도 1일차 길 상태와 실제 소요 시간

다키지리오지는 쿠마노 고도 나카헤치를 걷는 사람이 거의 예외 없이 첫발을 딛는 곳이다. 나도 2026년 3월 26일 아침 여기서 어머니와 함께 걷기 1일차를 시작했다. 그런데 걷기 전에 제일 궁금했던 건 "얼마나 예쁜가"가 아니라 길이 어떤 상태이고 몇 시간이 걸리느냐였다. 예순이 넘은 어머니와 함께였으니 더 그랬다.

이 글은 그날 실제로 지난 순서와 시각을, 사진에 남은 촬영 시각 그대로 옮긴 기록이다. 코스 전체를 어떻게 나눴는지는 쿠마노 고도 나카헤치 일정 짜는 법에, 기이타나베까지 들어가는 교통은 오사카에서 기이타나베 가는 법에 따로 써 두었다.

그날의 조건부터 밝힌다

같은 구간이라도 계절과 동행에 따라 체감은 완전히 달라진다. 아래 시간표를 읽기 전에 내 조건을 먼저 적어 둔다.

날짜2026년 3월 26일 (목), 걷기 1일차
동행어머니와 둘
구간다키지리오지 → 다카하라 → 치카츠유
숙박 방식다나베에 짐을 두고 버스로 오간 거점형 — 이날도 다나베로 돌아와 잤다
날씨맑음. 3월 말인데 걷다 보니 더웠다

여기서 하나 짚고 갈 게 있다. 나카헤치는 흔히 "가장 짧고 쉬운 길"로 소개되는데, 쉽다는 말과 평탄하다는 말은 다르다. 실제로 걸어 보면 산길이 8할이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반복된다.

08:13 — 다나베에서 나선 아침

기억으로는 아침 6시쯤 숙소를 나섰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찍은 첫 사진의 촬영 시각은 8시 13분이다. 기억보다 사진이 정확할 테니 이 글의 시각은 전부 사진 기준으로 적는다.

기이타나베역 앞 순례자 동상 — 걷기 첫날 아침 8시 13분, 다키지리행 버스를 타러 나선 길

기이타나베역 앞에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든 순례자 동상이 서 있다. 그 옆이 버스 승강장이다. 나카헤치를 걷는 사람 대부분이 여기서 다키지리행 버스를 탄다.

아침과 점심은 전날 편의점에서 미리 사 뒀다. 주먹밥과 샌드위치였다. 이건 요령이라기보다 필요에 가까웠다 — 산길에 들어서면 가게가 없다. 버스 요금은 이 여행 내내 전부 현금으로 냈다. 쿠마노 구간 버스에서 카드를 꺼낸 적이 한 번도 없다.

버스 시각표는 계절과 연도에 따라 바뀐다. 내가 탄 시각을 그대로 믿지 말고, 출발 전에 다나베시 관광 공식 사이트나 숙소에서 그해 시각표를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이 구간은 버스가 자주 다니지 않아서, 한 대를 놓치면 그날 계획이 통째로 밀린다.

09:09 다키지리오지 — 시작점에 서다

다키지리오지에 도착한 시각이 9시 9분이었다. 다나베에서 한 시간이 채 안 걸린 셈이다.

쿠마노고도 다키지리오지 입구 안내 표지 — 나카헤치 걷기 시작점

여기서 첫 스탬프를 찍었다. 스탬프북은 다나베에서 미리 받아 뒀다.

다나베에서 받은 쿠마노고도 나카헤치 루트맵과 스탬프북(크레덴셜) 안내 책자

스탬프에 대해 미리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데, 걸어 보니 스탬프는 코스 군데군데 놓여 있고 팸플릿에 위치가 잘 안내돼 있어서 찾기 어렵지 않았다. 산티아고에서 알베르게마다 도장을 받으러 다니던 것과 비교하면 훨씬 단순하다. 두 길의 차이는 산티아고 순례길 vs 쿠마노 고도 비교에 정리해 두었다.

첫 오르막 — 다키지리에서 다카하라까지

다키지리 마을 길가에 나무 표지판이 서 있다. "KUMANO KODO Takijiri" 아래에 다카하라·치카츠유 방향 화살표가 붙어 있는, 손으로 쓴 것 같은 소박한 표지다. 9시 18분 사진이다.

다키지리 마을의 나무 표지판 — KUMANO KODO Takijiri, 다카하라·치카츠유 방향 화살표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나카헤치 1일차의 첫 구간은 시작하자마자 오르막으로 들어간다.

삼나무 숲을 지나는 나카헤치 흙길 — 나카헤치는 대부분 이런 산길이다

길 상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한국의 정돈된 등산로를 생각하면 안 된다. 계단이 깔리고 데크가 놓인 길이 아니라, 야생 숲길에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는 정도다. 삼나무 뿌리가 길 위로 튀어나와 있고 이끼 낀 돌이 섞여 있다.

구체적으로 조심할 점은 두 가지였다.

  • 비 온 뒤에는 미끄럽다. 흙과 이끼가 물을 머금으면 체감이 확 달라진다.
  • 옆이 낭떠러지인 구간이 있다. 난간이 촘촘히 있는 길이 아니다.

다만 오르막 자체가 사람을 꺾을 정도는 아니었다. 어머니 연세를 생각해 애초에 속도를 낮춰 잡고 걸었는데 곧잘 따라오셨다. 부모님과 함께 걷는 걸 고민 중이라면 부모님과 쿠마노 고도 가능할까 쪽에 더 자세히 적어 두었다.

10시 30분쯤, 숲 한가운데서 작은 사당을 만났다. 붉은 천을 두른 석상 앞에 꽃이 놓여 있었다.

삼나무 숲속 오지(王子) 사당 — 붉은 천을 두른 석상과 꽃, 다카하라 가는 길 중간

이런 걸 만나면 걸음이 자연히 멈춘다. 그리고 우리는 남들보다 자주 멈췄다. 어머니가 조경업계에서 일하셔서 꽃과 나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신다. 사진을 찍고, 나는 옆에 서서 이건 무슨 나무냐 저건 무슨 꽃이냐 묻곤 했다. 걷다가 산티아고는 어땠느냐는 질문도 나왔고, 뜬금없이 결혼 이야기도 나왔다. 그날 소요 시간에는 그 멈춤이 전부 들어 있다.

11:02 다카하라 — 숲이 열리는 지점

다카하라 마을 사진이 10시 30분부터 11시 2분 사이에 몰려 있다. 다키지리오지에서 다카하라까지 대략 한 시간 반 남짓이 걸린 셈인데, 여기에는 사진 찍느라 멈춘 시간이 전부 포함돼 있다.

다카하라 마을 전망 — 계단식 논밭과 겹겹이 이어진 쿠마노 산줄기

다카하라는 오르막을 끝까지 올라온 뒤 숲이 갑자기 열리는 자리에 있다. 계단식 논밭 너머로 산줄기가 겹겹이 이어진다. 오전 내내 삼나무 기둥만 보다가 이 풍경을 만나면 보상 같은 느낌이 든다. 1일차에 쉬어 갈 곳을 딱 하나 고른다면 여기다.

오후 — 치카츠유까지

다카하라를 지나 치카츠유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오후 1시 46분 사진에도 여전히 삼나무 숲길이다.

오후 1시 46분 치카츠유 방향 삼나무 숲길 — 이끼 낀 돌과 흙길이 이어진다

치카츠유에 도착한 건 오후 3시쯤으로 기억한다. 이 시각만은 사진이 아니라 기억이라 "쯤"을 붙여 둔다. 길 사진은 1시 46분이 마지막이고, 그 뒤로는 도착할 때까지 카메라를 꺼내지 않았다.

길을 헷갈린 구간은 하루 통틀어 두 군데 정도 있었다. 어디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표지를 놓쳐 잠깐 멈춰 지도를 다시 본 순간이 그 정도 있었다는 뜻이다. 전체적으로는 표식이 잘 돼 있는 길이다.

그날 저녁에는 버스로 다나베로 돌아왔다. 숙소로 들어온 시각이 5시 10분이다.

다나베로 돌아와 저녁 5시 10분 식당에서 시킨 아사히 생맥주

3월 말 날씨와 짐 — 예상이 빗나간 부분

가기 전에는 3월 말이면 추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결과는 반대였다. 걷다 보니 더웠고, 날씨가 너무 좋았다. 챙겨 간 두꺼운 옷과 우비는 끝내 꺼내지 않았다.

대신 예상 못 한 게 하나 있었다. 숲길이 많은데도 자외선이 강했다. 선글라스를 챙겨 간 건 잘한 선택이었다.

짐은 아주 가볍게 갔다. 반팔 4벌, 바지 2벌, 바람막이 1개, 속옷과 양말 정도가 전부였다. 겨울 산티아고에서 침낭과 경량패딩을 지고 걷던 것과 비교하면 배낭 무게가 딴 세상이었다. 거점형으로 다녀서 걷는 날에는 그 짐마저 숙소에 두고 나올 수 있었다.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3월 말에 맑은 날을 만난 내 경우다. 같은 시기라도 비가 오면 판단이 달라진다. 앞서 적었듯 이 길은 젖으면 미끄럽다.

1일차를 요약하면

구간시각 (사진 기준)
다나베 출발08:13
다키지리오지 도착 · 첫 스탬프09:09
다키지리 마을 표지판 통과09:18
숲속 사당10:30
다카하라 전망11:02
치카츠유 방향 숲길 (마지막 길 사진)13:46
치카츠유 도착오후 3시쯤 (기억)
다나베 복귀17:10

정리하면 다키지리오지에서 치카츠유까지, 중간에 자주 멈추면서 여섯 시간 안팎이 걸렸다. 사진 없이 부지런히만 걸었다면 더 줄었을 것이고, 비가 왔다면 늘었을 것이다.

1일차를 앞두고 있다면 내가 실제로 도움을 받은 건 이 세 가지였다. 전날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미리 사 둘 것, 버스 시각표를 그해 기준으로 확인할 것, 그리고 다카하라에서 한 번 제대로 쉬어 갈 것.

비용이 궁금하다면 쿠마노 고도 비용 총정리에, 숙소를 어떻게 잡았는지는 쿠마노 고도 숙소 예약 방법에 적어 두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2026년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 총정리 | 실제 완주자가 알려주는 준비부터 완주까지

2026년 산티아고 순례길 실제 비용 공개 | 프랑스길 32일 완주 경비 총정리

산티아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알베르게 | El Gato Loco와 Ave Fenix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