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vs 쿠마노 고도 | 난이도·비용·숙소·풍경 비교

산티아고 순례길과 쿠마노 고도를 비교해 달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두 길이 자매길이라 양쪽을 다 걸으면 듀얼 필그림 인증을 받을 수 있다 보니, 한쪽을 걸어 본 사람이 다른 쪽을 궁금해하는 것이다.

나는 2026년 2월 5일 생장피드포르를 떠나 3월 8일 산티아고 대성당에 닿았고, 귀국한 뒤 3월 말에 어머니와 쿠마노 고도 나카헤치를 걸었다. 그래서 두 길을 한 해 안에 연달아 걸은 셈이 됐다. 이 글은 그 경험을 난이도·비용·숙소·풍경 네 가지로 나눠 정리한 기록이다.

비교하기 전에 — 내 조건부터 밝힌다

먼저 솔직하게 적어 둘 게 있다. 내가 걸은 두 길은 조건이 너무 달라서 같은 잣대로 재기 어렵다.

산티아고 프랑스길쿠마노 고도 나카헤치
시기2026년 2월 5일~3월 8일 (겨울)2026년 3월 25일~31일 (봄)
걸은 날32일 (완전 휴식일 4일 포함)3일 (3/26·27·28)
거리약 780km구간별 도보 (전체 거리는 따로 기록해 두지 않았다)
동행혼자 출발어머니와 둘
숙소 방식매일 이동하며 알베르게거점 2곳에 짐을 두고 버스로 왕복

즉 "780km를 32일 혼자 겨울에" 걸은 것과 "사흘을 어머니 속도에 맞춰 봄에" 걸은 것을 비교하는 것이다. 아래 내용은 두 길의 절대 난이도가 아니라 내가 겪은 조건 안에서의 차이로 읽어 주시면 좋겠다.

① 난이도 — 총량은 산티아고, 발밑은 쿠마노

산티아고 프랑스길은 길 자체가 어렵다기보다 양이 많다. 780km를 32일에 걸었으니 하루 평균 약 27km다. 평지에서 내 체감 속도는 시속 5~5.5km 정도였고, 그 속도로 하루 대여섯 시간 넘게 걷는 날이 한 달 내내 이어진다.

추수 끝난 넓은 들판과 파란 하늘 - 산티아고 순례길 메세타 구간

힘든 건 경사가 아니라 누적이었다. 초반 5~10일차에 허벅지와 다리 전체가 하체 운동을 한 것처럼 무거웠다. 무릎이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등산스틱은 아예 챙겨 가지 않았는데, 그래도 780km 동안 물집 하나 잡히지 않았다. 다만 오 세브레이로 같은 긴 내리막에서는 스틱이 있었으면 했다. 발보다 낮은 땅을 계속 밟으며 내려가니 무릎에 무리가 가고 발 전체가 쉽게 지쳤다.

오 세브레이로 순례자 동상 옆에서 쉬는 순례자와 뒤편 산줄기

쿠마노 고도 나카헤치는 반대였다. 가장 짧고 쉬운 길이라고 소개되지만, 실제로 걸어 보면 산길이 80% 정도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이어지고, 한국의 정돈된 등산로가 아니라 야생 숲에 통행 흔적이 나 있는 정도의 길이다. 비가 온 뒤에는 미끄러웠고 옆이 낭떠러지인 구간도 있었다.

삼나무 숲을 지나는 쿠마노 고도 나카헤치 흙길

정리하면 이렇다. 한 달을 버티는 총량 난이도는 산티아고가, 하루치 발밑 난이도는 쿠마노가 위였다는 게 내 체감이다. 다만 나는 쿠마노를 사흘만 걸었기 때문에, 나카헤치를 길게 이어 걸었을 때의 누적 피로가 어떤지는 말할 수 없다.

어머니 연세를 생각해 코스를 여유 있게 잡고 천천히 걸었는데 곧잘 따라오셨다. 속도를 낮추면 부모님과도 걸을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은 쿠마노 쪽의 분명한 장점이다.

② 비용 — 하루 단가가 완전히 다르다

돈 이야기는 환율 때문에 단순 합산이 어렵다. 그래서 원화는 원화대로, 유로와 엔은 그대로 적는다. 환산은 여행 시점 환율로 각자 계산하시는 편이 정확하다.

산티아고 프랑스길 32일 (2026년 2~3월)

여행 중 직접 적은 경비 노트를 순례 구간만 합산해 보니 2월 5일부터 3월 8일까지 총 1,552.56유로였다(2월 11일 숙소 40,000원은 원화 결제라 별도). 내역은 이렇다.

항목금액비중
식비931.70유로60%
숙박472.16유로30%
기타148.70유로10%
합계1,552.56유로하루 평균 48.52유로

가장 적게 쓴 날이 2월 8일의 22유로, 완주일을 빼고 가장 많이 쓴 날이 2월 24일 휴식일의 79.5유로였다. 알베르게가 하루 5~20유로 수준이니 돈이 새는 곳은 잠자리가 아니라 식비였다는 게 숫자로 드러난다.

쿠마노 고도 6박 7일 (2026년 3월)

쿠마노는 어머니와 둘이 다녀서 정확한 1인 정산이 어렵다. 아래는 대략치로만 읽어 주시기 바란다.

항목1인 기준 금액
항공 (대한항공 왕복)약 54만원
오사카 → 기이타나베5,500엔
트레일헤드 왕복 버스 (전체)5,000엔가량
다나베 게스트하우스 2박약 76,000원
카와유 온천 숙소 2박약 107,000원
교토 료칸 1박 (석식 포함)약 23만원
오사카 비즈니스호텔 1박약 62,000원
식비하루 약 3,000엔

차이가 선명하다. 산티아고는 잠자리가 하루 5~20유로였고, 쿠마노는 걷는 구간 숙소만 해도 1박에 4~5만원대였다. 온천은 숙소에서 이용해 따로 돈이 들지 않았다.

대신 기간이 짧다. 한 달을 걷는 여행과 일주일을 다녀오는 여행이니, 총액으로는 쿠마노가 훨씬 적게 든다. 하루 단가는 쿠마노가 비싸고, 총비용은 산티아고가 크다고 보면 맞다.

※ 항공·숙박·교통 요금은 시기와 환율에 따라 달라진다. 예산을 짤 때는 반드시 예약 시점의 실제 요금을 확인하시기 바란다.

③ 숙소 — "걷다가 정한다" vs "먼저 잡아야 한다"

이 항목이 두 길의 성격 차이를 가장 잘 보여 준다.

산티아고에는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가 있다. 일반 알베르게는 체감상 5~20유로, 도네이션형은 숙박만 10~12유로에 저녁까지 포함되면 15~20유로 정도를 냈다. 도미토리라 값이 싸고, 무엇보다 그날 몸 상태를 보고 어느 마을에서 멈출지 정하는 게 가능하다.

겨울에는 조건이 조금 달랐다. 빈 침대는 비교적 있었지만 문을 닫은 알베르게가 많았다. 그래서 오늘 어디가 여는지를 확인하며 걷는 날이 많았다.

겨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확인한 오늘 문 연 알베르게 안내판

난방과 담요가 있는 곳도, 없는 곳도 있었다. 데카트론에서 10유로에 산 얇은 면 침낭으로 버텼는데 방한에는 확실히 취약했다. 폰세바돈의 Domus Dei Foncebadon이 가장 추웠다. 고도도 높았고 담요 위생도 미덥지 않아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양말까지 신고 잤다.

쿠마노는 구조가 다르다. 민슈쿠가 정석이라고 하는데 예약이 늦어 자리가 없었고, 예약 절차 자체도 쉽지 않았다. 결국 부킹닷컴으로 잡았다. 다나베 게스트하우스 2박 → 카와유 온천 2박 → 교토 료칸 1박 → 오사카 1박 순이었다.

숙소를 매일 옮기는 대신 거점 두 곳에 짐을 두고 버스로 트레일헤드를 오가는 방식으로 걸었다. 짐 없이 걸을 수 있어 어머니와 다니기에 좋았지만, 그러려면 일정과 숙소를 출발 전에 다 확정해야 한다. 알베르게처럼 즉흥적으로 바꿀 여지가 없다.

카와유 온천 숙소의 무인 체크인 안내문 - 산수관 카와유 마츠야

식사는 양쪽 다 좋았다. 산티아고에서는 알베르게 제공식을 먹거나 장을 봐서 해 먹었고, 쿠마노에서는 숙소 근처 식당에서 먹은 정식과 교토 료칸의 코스 석식이 모두 만족스러웠다. 숙소 식사가 나온 건 교토 료칸 하루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밖에서 사 먹었다. 라멘·우동·스시도 다 좋았다. 원래 일식을 좋아하기도 한다.

※ 알베르게 운영 여부와 일본 숙소 요금·예약 조건은 시즌마다 바뀐다. 출발 전 공식 페이지에서 확인하시기 바란다.

④ 풍경 — 바뀌는 길과 깊어지는 숲

산티아고 프랑스길의 매력은 780km를 걷는 동안 풍경이 계속 바뀐다는 데 있다. 겨울 첫날 발카를로스 방향의 젖은 들판, 끝없이 트인 메세타 평원, 후반 갈리시아의 이끼 낀 숲길과 유칼립투스 길이 다 다르게 생겼다. 겨울이라 일출이 늦어서 마을 가로등이 아직 켜져 있는 도로를 걷다가 날이 밝는 경험도 자주 했다.

이끼 낀 나무들이 늘어선 갈리시아 숲길

쿠마노 고도는 정반대다. 대부분이 삼나무 숲 흙길이라 풍경의 변주가 크지 않다. 대신 그 숲이 깊다. 숲을 빠져나와 시야가 트일 때의 인상이 오히려 강했는데, 다카하라 마을에서 내려다본 계단식 논밭과 겹겹이 이어진 산줄기가 그랬다.

다카하라 마을 전망 - 계단식 논밭과 겹겹이 이어진 쿠마노 산줄기

그리고 쿠마노에서는 길을 보는 눈 자체가 달랐다. 어머니가 조경업에 계셔서 꽃과 나무를 보고 사진을 찍느라 중간중간 자주 멈추셨다. 나도 같이 서서 이건 무슨 나무냐, 저건 무슨 꽃이냐 묻곤 했다. 산티아고는 어땠는지 물어보시기도 했고 결혼 얘기도 나왔다. 혼자 걸을 때는 없던 속도와 대화가 생긴다.

계절 덕도 컸다. 3월 말이라 카와유 숙소 창밖으로 강과 벚꽃이 보였다. 카와유는 강 옆에 무료 노천온천이 있는 마을인데, 혼자나 친구와 왔으면 들어갔겠지만 어머니와 함께라 산책만 하며 쉬었다.

⑤ 짐 — 같은 신발, 다른 배낭

준비물은 계절 차이가 그대로 드러났다.

산티아고는 겨울이라 노스페이스 30L 배낭에 침낭과 경량패딩까지 들어갔다. 의류는 기능성 반팔 3벌, 바지 3벌, 긴팔 3벌, 양말 5벌, 속옷 5벌이었다.

쿠마노는 3월 말이라 날이 풀려 짐이 확 줄었다. 경량패딩·침낭·긴팔을 전부 빼고 반팔 4벌, 바지 2벌, 바람막이 1개, 속옷과 양말 정도만 챙겼다. 매우 가볍게 걸었다. 산티아고를 완주하고 귀국해 충분히 쉰 뒤였기 때문에 컨디션도 아주 좋았다.

신발은 양쪽 다 같은 것을 신었다. 89,000원에 산 아키클래식 범퍼 트레이너다. 겨울 프랑스길 780km를 이 신발로 걸었고 물집이 잡히지 않아서, 일본 순례길도 같은 신발로 다녀왔다. 다만 고어텍스가 아니라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다 들어온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⑥ 인증 — 콤포스텔라와 듀얼 필그림

완주 증서를 받는 절차도 성격이 달랐다.

산티아고는 순례자사무소에서 컴퓨터로 국적·출발지·순례 동기·종교 유무·이름 등을 직접 입력하면 번호표가 나온다. 3월 8일 오후 3시 반쯤 갔는데 한산해서 5~10분 만에 번호가 떴다. 크레덴셜을 펼쳐 도장을 확인하고 인증서를 받았다. 그날 인증서와 기념품에 쓴 돈이 합쳐서 16유로다.

완주 증서 콤포스텔라 두 장과 도장이 가득한 크레덴셜

쿠마노에서는 3월 28일 혼구 타이샤의 순례자 사무소에서 듀얼 필그림 인증을 받았다. 산티아고 완주 인증서와 크레덴셜을 보여 주면 된다. 사무소가 꽤 크고 넓었고, 직원에게 문의한 뒤 15분 정도 기다려 배지와 이중순례 인증, 기념사진까지 받았다. 직원이 영어를 잘해서 소통에 어려움은 없었다.

아쉬운 게 하나 있다. 이중순례자에게는 혼구 타이샤 위에서 북을 세 번 칠 기회가 주어진다는데, 사무소에 가기 전에 이미 구경을 마치고 내려온 뒤라 다시 올라가지 않았다. 다음에 더 긴 코스를 걷고 오면 그때는 꼭 부탁해서 쳐 보고 싶다.

※ 듀얼 필그림 대상 코스와 등록 조건은 변경될 수 있으니 출발 전 공식 안내를 확인하시기 바란다.

그래서 어느 길을 먼저 걸으면 좋을까

두 길을 다 걷고 나서 내가 정리한 기준은 이렇다.

이런 조건이라면추천
한 달 이상 비울 수 있고, 걷는 일 자체를 길게 해 보고 싶다산티아고 프랑스길
휴가가 일주일 안쪽이다쿠마노 고도
부모님이나 체력이 다른 사람과 함께 걷는다쿠마노 고도 (거점형으로)
일정을 즉흥적으로 바꾸며 걷고 싶다산티아고 프랑스길
하루 예산을 최대한 낮추고 싶다산티아고 프랑스길
숲길과 온천, 일본식 정식이 끌린다쿠마노 고도

순서를 묻는다면, 나처럼 산티아고를 먼저 걷고 쿠마노를 나중에 걷는 편을 권하고 싶다. 듀얼 필그림 인증을 혼구 타이샤에서 받는 구조상 산티아고 인증서가 먼저 있어야 편하고, 무엇보다 780km를 걷고 난 뒤의 사흘은 몸에도 마음에도 여유가 있었다.

두 길은 경쟁 관계가 아니다. 성격이 다른 두 여행이고, 자매길이라는 이름은 그래서 잘 붙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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