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쿠마노 고도 가능할까? | 엄마와 걸으며 느낀 준비 포인트

부모님과 쿠마노 고도를 걸을 수 있을까. 산티아고를 완주하고 돌아온 뒤 어머니와 나카헤치를 사흘 걸었고, 그 길 끝에서 듀얼 필그림 인증을 함께 받았다. 결론부터 적으면 가능하다. 다만 "일본의 순한 순례길"이라는 이미지만 믿고 가면 첫날부터 당황할 수 있다.

이 글은 2026년 3월 어머니와 실제로 걸은 일정을 기준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갈 때 미리 정해 두면 좋은 것들을 정리한 기록이다. 코스 자체를 짜는 법은 쿠마노 고도 나카헤치 일정 짜는 법에 따로 써 두었다.

어머니와 걸은 실제 조건

먼저 내가 어떤 조건으로 걸었는지 밝혀 둔다. 아래 내용은 이 조건 안에서의 경험이다.

시기2026년 3월 25일~31일 (6박 7일, 걷기는 3일)
코스나카헤치 — 다키지리오지에서 혼구 타이샤까지
동행어머니와 둘
숙소다나베 2박 → 카와유 온천 2박 → 교토 1박 → 오사카 1박
걷는 방식거점 숙소에 짐을 두고 버스로 트레일헤드를 오가는 방식

걸은 날은 3월 26일·27일·28일 사흘이다. 26일에 다키지리오지에서 다카하라를 지나 치카츠유 쪽까지, 27일에 치카츠유에서 노나카를 지나 도유가와까지, 28일에 헤이지가와에서 미코시토게를 넘어 혼구 타이샤까지 걸었다.

쿠마노고도 다키지리오지 입구 안내 표지 — 나카헤치 걷기 시작점

준비 포인트 ① 나카헤치는 산책로가 아니다

나카헤치는 쿠마노 고도 중에서 가장 짧고 쉬운 길로 소개된다. 그래서 완만한 숲길을 상상하고 갔는데, 실제로는 80% 정도가 산길이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이어지고, 한국의 정돈된 등산로처럼 계단과 난간이 갖춰진 길이 아니라 야생 숲에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나 있는 정도다.

삼나무 숲을 지나는 나카헤치 흙길 — 나카헤치는 대부분 이런 산길이다

비가 온 뒤에는 흙이 미끄러웠고, 옆이 낭떠러지인 구간도 있었다. 부모님과 간다면 나이보다 체력·계단·우천 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편이 맞다. 평지를 오래 걷는 것과 흙 산길에서 발을 디디는 것은 다른 일이다.

신발과 스틱 이야기를 덧붙인다. 나는 산티아고 780km를 스틱 없이 걸었고 등산화도 신지 않았다. 다만 그건 내 이야기다. 젖은 흙 내리막에서 부모님이 몸을 지탱할 것이 하나 있으면 훨씬 안심된다는 건, 경험이라기보다 그 길을 걸어 본 사람의 의견으로 읽어 주시면 좋겠다.

준비 포인트 ② 짐을 지고 걷지 않는 구조로 짠다

부모님과 걸을 때 이 부분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매일 숙소를 옮기지 않았다. 다나베에 2박, 카와유 온천에 2박씩 거점을 두고 짐은 숙소에 둔 채 버스로 그날의 출발점까지 이동해 걸었다. 걷기가 끝나면 다시 버스로 숙소에 돌아왔다.

산티아고에서는 배낭을 메고 매일 다음 마을로 이동했으니 정반대의 방식이다. 대신 쿠마노에서는 하루 치 물과 간식만 들고 걸었고, 저녁에 돌아올 곳이 정해져 있다는 것만으로 일정에 여유가 생겼다.

다카하라 마을 전망 — 계단식 논밭과 겹겹이 이어진 쿠마노 산줄기

이 방식은 버스 시간에 하루가 묶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걷는 속도가 빠르든 느리든 결국 버스 시각에 맞춰야 한다. 노선과 시간표는 계절마다 달라지니 출발 전에 공식 안내로 확인하는 편이 좋다.

준비 포인트 ③ 숙소는 일찍, 그리고 식사 포함 여부를 본다

쿠마노 고도는 민슈쿠에 묵는 것이 정석이라고들 한다. 우리도 그러려 했지만 예약이 늦었고 자리가 없었다. 민슈쿠는 예약 자체가 쉽지 않아서 결국 부킹닷컴으로 다나베와 카와유의 숙소를 잡았다. 자세한 경위는 쿠마노 고도 숙소 예약 방법에 정리해 두었다.

카와유 온천 마을의 강가 저녁 풍경 — 둘째·셋째 밤 거점 숙소가 있던 곳

부모님과 간다면 하나 더 확인할 것이 있다. 식사 포함 여부다. 내가 묵은 숙소 중 저녁이 나온 곳은 교토 료칸 한 곳뿐이었고, 다나베와 카와유 숙소는 식사가 포함되지 않아 저녁은 매번 근처 식당에서 사 먹었다. 하루 종일 산길을 걷고 내려온 뒤 다시 식당을 찾아 나서는 일은, 젊은 사람에게는 산책이지만 부모님에게는 일정 하나가 더 늘어나는 것이다.

카와유 온천 마을 근처 식당에서 먹은 저녁 상차림 — 고기 요리와 밥, 국, 반찬이 놓인 1인 트레이

음식 자체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라멘도 우동도 스시도 좋았고, 교토 료칸에서 먹은 코스 석식은 이번 일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저녁이었다. 식비는 하루 1인 3,000엔 정도로 잡았다.

준비 포인트 ④ 3월 말이면 짐은 한결 가벼워진다

3월 말의 쿠마노는 이미 날이 풀려 있었다. 두 달 전 겨울 산티아고에서 메고 다니던 경량 패딩, 침낭, 긴팔을 전부 뺐다. 반팔 4벌, 바지 2벌, 바람막이 1개, 속옷과 양말 정도가 전부였다.

부모님 짐을 꾸릴 때도 같은 기준이 쓸모 있다고 본다. 거점형으로 걷는다면 어차피 큰 가방은 숙소에 둔다. 대신 온천 마을에 묵는다면 갈아입을 옷을 넉넉히 챙기는 편이 낫다.

준비 포인트 ⑤ 온천은 회복 수단으로 계산에 넣는다

카와유 온천은 강가 자갈을 파면 온천물이 올라오는 노천탕으로 유명한 곳이다. 혼자였거나 친구와 갔다면 들어갔을 텐데, 어머니와 함께여서 우리는 강가를 산책만 하고 목욕은 숙소에서 했다. 숙소 온천을 이용했으니 온천 비용은 따로 들지 않았다.

사흘 내내 산길을 걷고 저녁마다 온천에 몸을 담글 수 있다는 건, 부모님과 걷는 일정에서 생각보다 큰 요소다. 다음 날 아침 컨디션이 달라진다.

실제로 걸어 보니 — 느려진 속도가 일정이 되었다

어머니 걸음에 맞춰 여유 있게 잡고 천천히 걸었는데, 생각보다 곧잘 따라오셨다. 오히려 일정을 자주 멈춰 세운 건 다른 이유였다.

어머니는 조경업계에서 일하신다. 그래서 길가의 꽃과 나무를 보고 사진을 찍느라 중간중간 멈추셨고, 나도 같이 멈춰 서서 이건 무슨 나무인지 저건 무슨 꽃인지 묻곤 했다. 산티아고는 어땠느냐는 질문도 그 숲길에서 나왔고, 결혼 이야기도 거기서 나왔다.

혼구로 내려가는 셋째 날 능선길 — 숲이 열리며 산줄기가 보인다

혼자 걸었다면 사흘 코스를 훨씬 빨리 끝냈을 것이다. 그런데 부모님과 걷는 길에서 속도는 목표가 아니다. 780km를 혼자 걸었던 겨울보다, 어머니와 멈춰 서서 나무 이름을 묻던 사흘이 기억에 더 또렷하게 남아 있다.

덤 — 부모님과 함께 듀얼 필그림 인증

3월 28일 정오 무렵 혼구 타이샤에 도착했다. 순례자 사무소에 산티아고 완주증과 크레덴셜을 보여 주고 문의하니 15분쯤 기다려 듀얼 필그림 인증과 기념 배지를 받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사무소는 꽤 넓었고 직원분이 영어를 잘해서 소통에 어려움은 없었다.

혼구 타이샤에서 받은 듀얼 필그림 인증서와 기념 핀 배지 (2026년 3월 28일자)

아쉬운 것도 하나 있다. 이중순례자에게는 혼구 타이샤 위에서 북을 세 번 칠 기회가 주어지는데, 사무소에 들르기 전에 이미 구경을 마치고 내려온 터라 다시 올라가지 않아 못 쳤다. 다음에 더 긴 코스를 걷고 오면 그땐 꼭 부탁해서 쳐 볼 생각이다.

발급 절차는 듀얼 필그림 인증 방법에 자세히 적어 두었다. 인증 대상 코스와 조건은 바뀔 수 있으니 출발 전에 공식 안내를 확인하시길 권한다.

비용은 어느 정도 들었나

대략적인 규모만 적는다. 항공은 대한항공 왕복 1인 약 54만원이었고, 오사카에서 기이타나베까지 열차가 5,500엔, 걷기 구간 체크포인트를 오간 교통비가 왕복 합쳐 5,000엔가량이었다. 숙소는 1인 환산으로 다나베 2박 약 7만 6천원, 카와유 2박 약 10만 7천원, 교토 료칸 1박이 석식 포함 약 23만원, 오사카 1박 약 6만 2천원이었다.

걷기를 마치고 기이타나베에서 교토로 넘어갈 때는 특급 구로시오 지정석을 탔다. 승차권 3,740엔에 특급권 2,730엔, 1인 6,470엔으로 세 시간쯤 걸렸다. 항목별 내역은 쿠마노 고도 비용 총정리에 정리해 두었다.

정리 — 부모님과 갈 때 미리 정할 것

  • 거점을 정한다. 매일 숙소를 옮기지 말고 2박씩 묶어 짐을 두고 걷는다.
  • 버스 시간표를 먼저 본다. 걷는 거리가 아니라 버스 시각이 하루를 정한다.
  • 숙소는 일찍 잡고, 저녁 포함 여부를 확인한다. 걷고 내려와 식당을 찾는 일도 일정이다.
  • 산길 기준으로 판단한다. 나카헤치는 쉬운 길로 소개되지만 대부분 흙 산길이고 비 온 뒤엔 미끄럽다.
  • 속도를 목표에서 뺀다. 멈춰 서는 시간이 결국 남는 기억이 된다.

산티아고와 쿠마노 고도를 난이도·비용·숙소·풍경으로 비교한 글은 여기에 따로 있다. 부모님과 어느 쪽이 나을지 고민 중이라면 그 글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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