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스틱 꼭 필요할까? | 스틱 없이 780km 걸은 후기
산티아고 순례길 스틱 꼭 필요할까? | 스틱 없이 780km 걸은 후기
산티아고 순례길 스틱은 준비물 목록에서 가장 오래 고민하게 되는 물건 중 하나다. "무릎 때문에라도 꼭 챙겨라"는 말과 "짐만 된다"는 말이 나란히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스틱을 아예 챙기지 않고 프랑스길을 완주했다. 그리고 다시 걷는다면 이번에는 챙겨갈 생각이다.
나는 2026년 2월 5일부터 3월 8일까지 32일 동안 생장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프랑스길 약 780km를 걸었다. 하루 평균 약 27km를 걸었고, 그 32일 내내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글에서는 스틱 없이 걸어본 사람 입장에서 실제로 어땠는지, 어떤 구간에서 아쉬웠고 대신 어떻게 걸었는지를 정리했다.
스틱은 처음부터 목록에서 뺐다
나는 가져갔다가 안 쓴 게 아니라 아예 안 챙겨갔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스틱 사용법을 몰랐다. 길이를 어떻게 맞추는지, 오르막과 내리막에서 어떻게 짚는지 배운 적이 없었다. 둘째, 그런 상태로 가져가면 번거로운 짐이 될 것 같았다.
배낭 무게를 한 그램이라도 줄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준비물 체크리스트를 짤 때 "쓸지 안 쓸지 모르겠는 물건"은 대체로 뺐는데, 스틱도 그 분류에 들어갔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이 판단으로 780km를 문제없이 걸었으니 완전히 틀린 선택은 아니었다. 다만 걷는 내내 "있었으면" 싶은 순간이 분명히 있었다.
스틱이 아쉬웠던 건 오르막이 아니라 내리막이었다
의외였던 건, 힘들다고 소문난 오르막에서는 스틱 생각이 별로 안 났다는 점이다. 아쉬웠던 쪽은 내리막이었다. 특히 오 세브레이로 내리막처럼 산에서 내려가는 구간이 그랬다.
내리막은 지금 딛고 있는 발보다 낮은 높이의 땅을 계속 밟으며 내려가게 된다. 그 충격이 아무래도 무릎에 무리가 갈 수 있고, 발 전체도 쉽게 피로해졌다. 오르막은 숨이 차서 힘든 것이고 내리막은 몸이 깎이는 느낌으로 힘든 것인데, 스틱이 필요한 건 후자 쪽이라는 걸 걸으면서 알았다.
오 세브레이로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을 때도 빠지지 않는 구간이다. 올라갈 때의 고생이 유명하지만, 내려올 때의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는 게 내 기억이다.
32일 동안 통증은 어땠나
솔직히 말하면 통증이 꽤 크진 않았다. 스틱 없이 걸었으니 무릎이 망가졌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다만 초반 5~10일 차에는 확실히 몸이 무거웠다. 오래 걷는 게 며칠씩 쌓이다 보니 허벅지와 다리 전체의 근육이 하체 운동을 세게 한 다음 날 같은 느낌이었다. 아파서 못 걷는 게 아니라, 다리가 통째로 묵직해서 첫 몇 킬로미터가 유독 안 나가는 종류의 무거움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경우다. 체중, 배낭 무게, 원래 무릎 상태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라 "스틱 없어도 안 아프다"고 일반화할 생각은 없다. 걷는 동안 겪은 발 쪽 문제는 물집과 부상 이야기에 따로 정리해뒀다.
스틱 대신 걷는 방법을 바꿨다
스틱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걷는 방식으로 버티게 됐다. 두 가지가 전부였다.
오르막에서는 갈지자로 걸었다. 경사를 정면으로 치고 올라가는 대신 좌우로 방향을 바꿔가며 올라가면 한 걸음의 부담이 줄어든다. 거리는 늘어나지만 숨은 덜 찼다.
내리막에서는 몸에 힘을 뺐다. 무릎에 최대한 무리가 안 가게,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다리를 뻣뻣하게 세우고 한 발씩 찍어 내려가면 그 충격이 그대로 무릎으로 올라온다. 힘을 빼고 흐르듯 내려가는 쪽이 훨씬 덜 부담됐다.
주변 순례자 체감 비율은 8:2였다
길에서 본 순례자들은 스틱을 쓰는 쪽이 훨씬 많았다. 내 체감으로는 대략 8:2 정도, 열 명 중 여덟 명은 스틱을 짚고 걷는 느낌이었다. 두 개를 다 쓰는 사람도 있었고 하나만 쓰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까 "스틱 없이도 완주할 수 있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게 다수의 선택은 아니었다. 나는 소수 쪽이었고, 소수 쪽이어도 걷는 데 지장은 없었다는 정도로 정리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다시 걷는다면 접히고 가벼운 걸로 챙긴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음번엔 챙겨갈 생각이다. 없어도 괜찮긴 했다. 780km를 그렇게 걸었으니까. 그런데 걷고 나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인간의 몸은 소모품과 다름없다. 지금 버틸 수 있다고 계속 써버리면 노년에 그 대가를 치른다. 관리를 잘해줘야 나중에 고생을 안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순례길을 걷는 동안, 특히 내리막을 내려가면서 자주 들었다. 그래서 다음에 걷는다면 접히고 가벼운 스틱으로 하나 챙길 것 같다.
고른다면 기준은 명확하다. 안 쓸 때 배낭에 접어 넣을 수 있을 것, 그리고 가벼울 것. 내가 처음에 스틱을 뺀 이유가 "번거로운 짐"이었으니, 그 이유를 없애주는 물건이어야 들고 갈 수 있다. 사용법은 출발 전에 미리 익혀가야 한다는 것도 이번에 배운 부분이다.
정리 — 스틱, 이런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내 경험만 놓고 정리하면 이렇다.
- 없어도 완주는 된다. 나는 스틱 0개로 32일, 780km를 걸었다.
- 아쉬운 건 내리막이다. 오 세브레이로처럼 산에서 내려오는 구간에서 특히 그랬다.
- 대신 걷는 법을 바꿔야 한다. 오르막은 갈지자, 내리막은 힘 빼고 미끄러지듯.
- 초반 5~10일 차의 근육 피로는 각오할 것. 통증이라기보다 다리 전체가 묵직해지는 느낌이었다.
- 무릎이 이미 약하다면 챙기는 쪽을 권한다. 길에서도 여덟 명 중 여덟이 아니라 열 명 중 여덟이 쓰고 있었다.
스틱은 있으면 편하고 없으면 걷는 방식으로 메꾸는 물건에 가깝다. 다만 그 "메꾸는" 몫을 무릎이 대신 낸다는 걸 알고 선택하는 게 좋다. 나머지 장비를 어떻게 골랐는지는 다시 걷는다면 무엇을 바꿀까에 함께 정리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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