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카츠유에서 도유가와까지 | 쿠마노 고도 2일차, 노나카·츠기자쿠라를 지나 버스로 걷기를 끊은 날

치카츠유는 쿠마노 고도 나카헤치를 나눠 걷는 사람에게 사실상 중간 기착지 같은 곳이다. 나도 2026년 3월 27일 아침, 전날 걷기를 끝낸 치카츠유로 다시 돌아와 둘째 날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날 기록에는 남들과 조금 다른 구석이 있다. 끝까지 걷지 않고 중간에서 버스를 타고 끊었다는 것, 그리고 그 끊은 지점의 이름을 나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는 것이다.

이 글은 그날 실제로 지난 순서와 시각을, 사진에 남은 촬영 시각 그대로 옮긴 기록이다. 첫날 구간은 다키지리오지에서 다카하라까지 첫 오르막에, 3일을 어떻게 나눴는지는 쿠마노 고도 나카헤치 일정 짜는 법에 따로 써 두었다.

그날의 조건부터 밝힌다

같은 구간이라도 계절과 동행에 따라 체감은 완전히 달라진다. 아래 시간표를 읽기 전에 내 조건을 먼저 적어 둔다.

날짜2026년 3월 27일 (금), 걷기 2일차
동행어머니와 둘
구간치카츠유 → 노나카·츠기자쿠라 일대 → 도유가와 (GPS 기록 기준)
숙박 방식거점형 — 이날 다나베를 떠나 카와유 온천으로 거점을 옮겼다
날씨맑음. 3월 말인데 걷다 보니 더웠다
마무리끝까지 걷지 않고 중간에서 버스를 탔다

쿠마노 고도를 걷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숙소를 매일 옮기며 짐을 지고 이어 걷거나, 한 곳에 짐을 두고 버스로 트레일헤드를 오가거나. 나는 다나베에 2박, 카와유에 2박을 두고 버스로 들락거리는 거점형으로 걸었다. 3월 말이라 날이 풀려 짐 자체도 가벼웠는데, 거점형이라 걸을 때 메는 짐은 더 줄었다.

삿갓을 쓴 순례자가 앞서 걷는 삼나무 숲길 — 이끼 낀 돌담이 길 오른쪽을 따라간다

09:45 — 치카츠유에서 다시 시작했다

그날 찍은 첫 사진의 촬영 시각은 오전 9시 45분이다. 첫날은 아침 8시대에 움직였는데 이날은 그보다 한 시간 반쯤 늦었다. 거점형으로 걸으면 출발 시각이 내 의지가 아니라 버스 시각에 맞춰진다. 이게 거점형의 가장 큰 제약이다.

10분쯤 더 걸어간 마을 어귀에 수양벚나무 한 그루가 크게 늘어져 있었다. 9시 55분 사진이 전부 이 나무다. 다섯 장이 연달아 찍혀 있는 걸 보면 둘 다 한참 서 있었던 모양이다.

츠기자쿠라 가는 길 마을의 수양벚나무 아래 — 걷다 멈춰 꽃 사진을 찍는 어머니

10:27 — 노나카로 가는 길, 어머니가 자꾸 멈춘 이유

치카츠유를 지나면 삼나무 사이로 난 포장도로가 한동안 이어진다. 나카헤치가 산길 8할인 건 맞지만, 구간에 따라 이렇게 차가 다닐 수 있는 길도 섞여 있다. 10시 27분 사진이 그 길이다.

노나카로 이어지는 삼나무 숲 사이 포장도로 — 쿠마노 고도 2일차 오전 10시 27분

그런데 사진 폴더를 다시 열어 보면, 이날 오전 사진의 절반이 풍경이 아니라 나무와 꽃 클로즈업이다. 어머니가 조경 쪽 일을 하셔서 길에서 꽃이나 나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하신다. 10시 29분에서 30분 사이에만 네 장이 같은 나무를 찍고 있다.

길가 나무에 핀 꽃 클로즈업 — 쿠마노 고도 2일차 오전, 어머니가 멈춰 들여다본 나무

그럴 때마다 같이 멈춰서 이건 무슨 나무냐고 묻곤 했다. 부모님과 걷는 길이 느려지는 건 체력 때문만은 아니다. 멈출 일이 많아서 느려진다. 일정을 짤 때 이 시간을 빼먹으면 계획이 어긋난다. 이 부분은 부모님과 쿠마노 고도 가능할까에 따로 정리해 두었다.

11:02 — 길가 쉼터에 놓여 있던 색종이 책갈피

11시 2분, 길가 쉼터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봤다. 색종이로 접은 책갈피가 가득 담겨 있고, 자유롭게 가져가라는 일본어 안내가 붙어 있었다. 누가 만들어 두는지는 모른다. 쿠마노 고도를 걸으면서 길에 사람 손이 계속 닿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건 이런 것 때문이었다.

길가 쉼터에 놓인 색종이 책갈피 — 자유롭게 가져가라는 일본어 안내가 붙어 있다

스탬프도 코스 군데군데 있었다. 다나베에서 받은 팸플릿에 위치가 잘 안내돼 있어서 찍기가 어렵진 않았다. 다만 길이 헷갈리는 구간이 두 군데쯤 있었다. 표식이 아예 없는 게 아니라, 갈림길에서 어느 쪽이 옛길인지 잠깐 멈춰 보게 되는 지점이 있다는 뜻이다.

12:47 — 걷기를 끊은 지점, 이름은 나중에 알았다

12시 47분 사진에는 벽에 붙은 안내문이 찍혀 있다. 빨간 화살표와 함께 'KUMANO KODO 熊野古道'. 그 아래에는 이 물은 손 씻는 물이고 마시는 물이 아니라는 안내가 일본어와 영어로 붙어 있었다.

쿠마노 고도 방향을 가리키는 빨간 화살표 안내문과 손 씻는 물 안내 — 2일차 걷기를 끝낸 지점

솔직하게 적어 둘 게 있다. 나는 이날 걷기를 끝낸 지점의 지명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 글에 쓴 '도유가와'는 사진에 남은 GPS 좌표를 나중에 역추적해서 나온 지명이지, 그날 내가 알고 있던 이름이 아니다. 걷다가 "여기까지" 하고 멈춘 곳이었을 뿐이다.

왜 거기서 끊었는지도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 지어내지 않겠다. 다만 사진 시각을 보면 12시 47분에 그 안내문을 찍고 1시 52분에 다시 사진이 찍혀 있으니, 한 시간 남짓을 그 근처에서 보낸 셈이다. 버스를 기다린 시간으로 보인다.

버스 시각은 숙소 호스트에게서, 요금은 현금으로

쿠마노 고도를 거점형으로 걸으려면 결국 버스를 알아야 한다. 나는 이걸 인터넷에서 찾은 게 아니라 첫날 다나베 숙소 호스트가 친절하게 설명해 준 내용을 토대로 확인했다. 어디서 몇 시에 타면 되는지를 그때 들어 두었다.

걷기를 끝낸 지점 근처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거기서 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하나 더, 쿠마노 구간에서 버스 요금은 전부 현금으로 냈다. 교통카드로 해결될 거라 생각하고 현금을 안 챙기면 곤란해질 수 있다.

다만 버스 시각표와 요금은 해마다 바뀌는 정보다. 내가 탄 노선의 배차와 요금을 여기 숫자로 옮겨 적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다. 가기 전에는 반드시 현지 버스 운행사와 다나베시 쿠마노 고도 공식 안내 페이지에서 그해 시각표를 직접 확인하고, 숙소 호스트에게 한 번 더 묻는 쪽을 권한다. 기이타나베까지 들어가는 교통편은 오사카에서 기이타나베 가는 법에 정리해 두었다.

14:42 — 유노미네를 지나 15:17 카와유 체크인

버스는 유노미네 온천을 거쳐 카와유로 갔다. 유노미네를 지난 시각은 사진에 2시 42분과 2시 49분으로 남아 있다. 마을 안내도를 찍은 사진이 한 장 있는데, 이날 유노미네에서 내려 뭘 하지는 않았다. 지나가며 본 게 전부다.

유노미네 온천 마을 안내도 — 카와유로 가는 버스가 지나는 길목

그런데 지나가며 본 것만으로도 너무 예쁘고 아기자기했다. 관광객도 꽤 있었다. 다음에 또 오면 여기서 한 번 자 보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카와유 숙소에 들어간 건 3시 17분이다. 안내문 사진이 남아 있는데, 셀프 체크인 방식이라 안내문을 읽고 들어가는 구조였다. 숙소를 어떻게 잡았는지는 쿠마노 고도 숙소 예약 방법에 썼다. 민슈쿠가 정석이라는 걸 알면서도 예약이 안 돼 결국 부킹닷컴으로 잡은 이야기다.

카와유 온천 숙소의 셀프 체크인 안내문

저녁 — 강물이 정말로 따뜻했다

카와유 온천은 이름 그대로 강이 온천인 동네다. 강가에 무료 노천탕이 있는데, 혼자나 친구와 왔으면 들어갔을 것 같다. 어머니와 온 터라 들어가진 않고 산책만 했다. 대신 걸으면서 보니 강물이 실제로 따뜻해서 신기했다. 저녁 무렵 강가 사진이 5시 16분에 찍혀 있다.

카와유 온천 마을의 강가 저녁 풍경 — 벚꽃이 핀 강변

저녁은 숙소에서 먹지 않았다. 다나베와 카와유 숙소는 둘 다 식사가 포함되지 않아 저녁은 전부 근처 식당에서 사 먹었다. 카와유 첫날 저녁은 ときわや(토키와야)에서 먹은 일본 가정식이었다. 새우와 연근, 가지 튀김에 조림, 가라아게, 된장국, 밥이 한 상에 나왔다.

카와유 토키와야의 저녁 정식 — 새우·연근·가지 튀김, 조림, 가라아게, 된장국

숙소 온천은 대중탕 느낌이었지만 바깥 풍경이 보여서 좋았다. 걷고 들어와 씻고 나면 그게 그날의 마무리였다.

2일차를 한 줄로 정리하면

09:45치카츠유에서 걷기 재개
09:55마을 수양벚나무 앞에서 한참 멈춤
10:27노나카 방향 삼나무 사이 포장도로
11:02길가 쉼터, 색종이 책갈피
12:47걷기 종료 (GPS 기록상 도유가와 일대)
13:52버스 대기
14:42유노미네 온천 통과
15:17카와유 온천 숙소 체크인
17:16강가 산책
17:26토키와야에서 저녁

정리하고 보니 이날은 걷기보다 이동과 정착이 많은 날이었다. 쿠마노 고도를 3일로 나눠 걸을 때 둘째 날은 거점을 옮기는 날이 되기 쉽다. 그 점을 미리 알고 일정을 짜면, 끝까지 못 걸었다는 아쉬움 대신 "오늘은 옮기는 날"로 받아들이기가 쉬워진다.

다음 글에서는 새벽 5시 40분에 나서야 했던 3일차, 혼구 타이샤까지 간 날을 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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