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빨래 현실 | 32일 중 25일은 손빨래였다

산티아고 순례길 빨래 현실 | 32일 중 25일은 손빨래였다

산티아고 순례길 빨래는 준비 단계에서 잘 그려지지 않는 부분이다. 옷을 몇 벌 챙길지는 다들 고민하는데, 정작 그 옷을 매일 어떻게 빨고 어디에 널지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실제로 걸어보면 빨래는 걷는 것만큼이나 하루 일정을 좌우한다.

나는 2026년 2월 5일부터 3월 8일까지 32일 동안 생장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프랑스길 약 780km를 걸었다. 그 32일 중 25일 정도는 손빨래를 했다. 이 글에서는 세탁기를 언제 썼고, 겨울에 옷을 어떻게 말렸고, 옷은 몇 벌을 가져갔는지를 실제로 겪은 대로 정리했다.

산티아고 알베르게 내부 모습 — 순례자 숙소

32일 중 25일은 손빨래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순례길 빨래의 기본값은 손빨래다. 나는 32일 중 25일 정도를 손으로 빨았다. 나머지 며칠만 세탁기를 돌렸다.

이유는 단순하다. 매일 나오는 빨래래봐야 그날 입은 상의 하나, 하의 하나, 양말과 속옷이 전부다. 이 정도 양으로 세탁기를 돌리는 건 시간도 돈도 아깝다. 게다가 세탁기가 있는 알베르게라도 대수가 한두 대뿐이라 도착 순서대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씻으면서 같이 손으로 빨아버리는 쪽이 훨씬 빠르다.

세탁기는 큰 도시에서 쉴 때만 썼다

세탁기를 돌린 건 큰 도시에서 쉬어가는 날이었다. 셀프 빨래방에서 돌리거나, 세탁기가 있는 알베르게에서 돌렸다.

요금이나 이용 방식은 낯설 게 없었다. 우리나라 코인빨래방과 같은 금액이고 같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동전이나 카드를 넣고, 코스를 고르고, 다 되면 꺼내는 식이다. 다만 이건 내가 2026년 2~3월에 겪은 인상이고, 도시와 업소마다 요금은 다르니 현장에서 표시된 가격을 확인하는 게 정확하다.

세제가 필요하면 현지 마트에서 사면 된다. 스페인 마트에는 세탁 세제가 종류별로 잘 갖춰져 있어서, 한국에서 무겁게 챙겨갈 이유는 없다.

스페인 마트 세제 코너에서 본 세탁 세제

도착하면 씻고, 빨고, 넌다

내 알베르게 도착 시간은 보통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였다. 그래서 빨래하는 날의 순서는 늘 똑같았다. 씻고, 빨고, 넌다.

이 순서에는 이유가 있다. 샤워하는 김에 그날 입은 옷을 같이 빨면 물도 손도 한 번만 쓰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3~5시에 널어야 해가 남아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마른다. 저녁 먹고 와서 빨면 그때부터는 그냥 밤새 축축한 채로 걸려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도착 시간이 빨래를 좌우한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늦게 도착한 날은 빨래를 포기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루 일과가 어떻게 굴러갔는지는 순례길 하루 일과 글에 더 자세히 적어두었다.

돌집 알베르게 마당과 야외 테이블

겨울에 옷 말리기 — 건조대, 빨랫줄, 그리고 난방기

빤 옷은 알베르게에 있는 건조대나 빨랫줄에 걸어두었다. 대부분의 알베르게에는 마당이나 테라스, 아니면 실내 한쪽에 널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문제는 2~3월이라는 계절이다. 새벽과 저녁은 쌀쌀했고, 비가 오면 체감 기온이 크게 떨어졌다. 이런 날씨에 밖에 널어둔 옷이 하룻밤 만에 뽀송해지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난방기가 있으면 그 근처에서 말리기도 했다. 겨울 순례길에서 난방기가 있는 알베르게는 그 자체로 반가운 곳인데, 옷 말리기까지 되면 체감이 확 달라진다. 다만 난방기 주변은 다들 노리는 자리다. 도착이 늦으면 이미 다른 순례자들의 옷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공용 공간을 어떻게 쓰는지는 알베르게 에티켓 글에 정리해두었다.

알베르게 거실 — 소파와 넓은 창이 있는 휴게 공간

32일을 버틴 실제 옷 구성

내가 실제로 가져간 옷은 이랬다.

  • 기능성 반팔 3벌
  • 긴팔 3벌
  • 바지 3벌
  • 양말 5벌
  • 속옷 5벌

상의는 반팔과 긴팔을 합쳐 여섯 벌이지만, 겨울이라 실제로는 긴팔 위주로 돌려 입었다. 결국 매일 갈아입는 건 상의 하나, 하의 하나 수준이라 하루에 나오는 빨랫감이 많지 않다. 앞에서 손빨래가 기본값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여겨볼 건 양말과 속옷을 5개씩 챙겼다는 점이다. 상의·하의보다 하나씩 더 많다. 겉옷은 하루 정도 더 입어도 버티지만 양말과 속옷은 그러기 어렵기 때문인데, 이 여유분이 뒤에서 이야기할 '널 곳 없는 날'을 버티게 해줬다.

참고로 이 옷들이 다 들어간 배낭은 30L짜리였다. 짐 구성 전체는 30L 배낭 후기준비물 총정리 2편에 적어두었다.

완주 내내 사용한 노스페이스 30L 배낭

빨래비누는 챙겼지만 잘 안 쓰게 됐다

세탁 준비물로 빨래용 비누를 가져갔다. 결과만 말하면 잘 쓰지 않게 되더라.

이유는 사소하지만 매일 겪으면 꽤 성가시다. 한번 쓰고 나면 비누가 미끌미끌한 상태가 되는데, 이걸 어디에 두고 어떻게 챙길지가 애매하다. 젖은 비누를 다시 배낭에 넣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다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 짐을 싸기도 어렵다. 처치 곤란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바디워시로 빨기도 했다. 어차피 씻으면서 같이 빠는 흐름이니 손에 이미 들려 있는 걸 쓰는 게 편했다. 세탁력이 전문 세제만 못하다고 느낀 적은 딱히 없었다. 매일 빠는 옷이라 때가 쌓일 틈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다시 짐을 싼다면 고체 빨래비누는 빼고, 씻는 용도와 빠는 용도를 겸할 수 있는 액체류 하나로 통일할 것 같다. 세제가 정말 필요한 날은 세탁기를 돌리는 날인데, 그날은 앞서 말했듯 현지 마트에서 사면 된다.

진짜 문제는 세탁이 아니라 널 곳이었다

32일을 걸으면서 빨래 때문에 곤란했던 순간을 꼽자면, 빠는 과정이 아니라 너는 과정이었다. 보통 널 곳이 없다.

알베르게에 건조대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이미 다른 사람들의 옷으로 꽉 차 있는 경우가 많다. 겨울에는 밖에 널어봐야 마르지 않으니 실내 자리를 두고 경쟁이 붙는다. 널 자리가 없으면 아무리 빨고 싶어도 빨래를 시작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빨래 주기를 날짜가 아니라 재고로 관리했다. 양말과 속옷이 1~2개 남았을 때, 그리고 그 알베르게에 건조가 가능한 구간이 있을 때 — 이 두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빨았다. 매일 빨겠다고 마음먹기보다, 널 수 있는 날을 만나면 몰아서 빠는 쪽이 현실적이었다.

양말·속옷을 5개씩 챙긴 게 여기서 힘을 발휘한다. 여유분이 있으니 "오늘은 널 데가 없네" 하고 하루 이틀 넘겨도 곤란해지지 않는다. 반대로 3개씩만 챙겼다면 널 곳이 없는 날에도 무리해서 빨아야 했을 것이다.

식탁에 펼쳐 말리는 크레덴셜 — 색색의 알베르게 도장들

정리 — 순례길 빨래, 이 정도만 알고 가면 된다

32일을 걷고 나서 남은 결론은 이렇다.

  • 기본은 손빨래다. 32일 중 25일 정도가 그랬다. 세탁기는 큰 도시에서 쉬어가는 날의 옵션이다.
  • 세탁기 요금과 이용 방식은 우리나라 코인빨래방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 알베르게 도착 직후(오후 3~5시)에 씻고 빨고 널어야 조금이라도 마른다.
  • 겨울에는 건조대·빨랫줄에 널되, 난방기가 있으면 그 근처가 가장 잘 마른다.
  • 양말과 속옷은 상·하의보다 넉넉하게. 널 곳이 없는 날을 버티는 여유분이 된다.
  • 고체 빨래비누는 미끌거려서 처치가 곤란하다. 바디워시로도 충분히 빨렸다.

순례길에서 빨래는 결국 걷는 리듬의 일부다. 몇 시에 도착하느냐, 그 알베르게에 널 자리가 있느냐에 따라 그날 빨래를 할지 말지가 정해진다. 그러니 옷을 몇 벌 챙길지 고민할 때는 "며칠에 한 번 빨 수 있을까"가 아니라 "널 데가 없는 날이 며칠쯤 있을까"를 기준으로 잡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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