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신몬오지에서 혼구 타이샤까지 | 쿠마노 고도 3일차, 새벽 5시 40분에 나선 12시간

혼구 타이샤는 쿠마노 고도 나카헤치를 걷는 사람에게 사실상 결승선 같은 곳이다. 나도 2026년 3월 28일, 걷기 셋째 날에 어머니와 함께 이곳에 닿았다. 그런데 이날의 기록에서 제일 눈에 띄는 건 도착 시각이 아니라 출발 시각이다. 숙소를 나선 게 새벽 5시 40분, 다시 숙소로 돌아온 게 저녁 6시 5분. 꼬박 12시간이 조금 넘는 하루였다.

이 글은 그날 실제로 지난 순서와 시각을, 사진에 남은 촬영 시각 그대로 옮긴 기록이다. 첫날 구간은 다키지리오지에서 다카하라까지 첫 오르막에, 둘째 날은 치카츠유에서 도유가와까지에, 3일을 어떻게 나눴는지는 쿠마노 고도 나카헤치 일정 짜는 법에 따로 써 두었다.

그날의 조건부터 밝힌다

같은 구간이라도 계절과 동행에 따라 체감은 완전히 달라진다. 아래 시간표를 읽기 전에 내 조건을 먼저 적어 둔다.

날짜2026년 3월 28일 (토), 걷기 3일차이자 마지막 날
동행어머니와 둘
숙소를 나선 시각새벽 5시 40분
숙소로 돌아온 시각저녁 6시 5분
확인되는 경유지홋신몬오지 → 산골 마을 → 혼구 타이샤 → 오유노하라 (사진 촬영 시각·위치 기준)
숙박 방식카와유 온천에 2박을 두고 버스로 오간 거점형
날씨새벽엔 안개, 낮엔 맑음

05:40 — 깜깜한 강가에서 시작한 이유

그날 첫 사진의 촬영 시각은 새벽 5시 40분이다. 산 사이로 안개가 가라앉아 있고 강 건너 마을 불빛이 아직 켜져 있다.

새벽 5시 40분 카와유 온천 강가 — 아직 어둑한 계곡과 안개 낀 산

이 시각에 나선 이유는 하나였다. 버스가 많이 다니지 않아서다. 그 버스를 놓치면 하루 전체가 밀릴 것 같았다. 목표는 혼구 타이샤에 오후 1시에서 2시 사이에 닿는 것이었다.

이게 거점형으로 걸을 때 치르는 대가다. 짐을 숙소에 두고 가볍게 걸을 수 있는 대신, 출발 시각을 내가 정하지 못한다. 산간 지역 버스는 편수가 적어 한 편을 놓치면 다음 편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시간표는 바뀌니 가시기 전에 공식 안내로 꼭 다시 확인하시길 권한다.

06:40 — 숲에 들어섰다

다음 사진은 1시간 뒤인 아침 6시 40분, 삼나무 숲 사이로 통나무 계단이 놓인 길이다.

삼나무 숲 사이로 난 통나무 계단길 — 쿠마노 고도 3일차 이른 아침

여기서 솔직히 적어 둘 게 있다. 이 사진에는 위치 정보가 없고, 그다음 사진까지 세 시간 넘게 기록이 비어 있다. 어디서 버스를 내려 어디서부터 걷기 시작했는지를 나는 적어 두지 않았다. 기억으로 지명을 채워 넣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틀린 정보를 남기게 되니, 비어 있는 건 비어 있는 대로 둔다.

09:59 — 홋신몬오지

다음으로 확실한 지점은 오전 9시 59분의 홋신몬오지(発心門王子)다. 길가에 붉은 사당이 서 있고, 그 앞에 도리이와 손 씻는 물받이, 안내 표지와 돌비석이 있다.

홋신몬오지 — 붉은 사당과 도리이, 손 씻는 물받이가 있는 쿠마노 고도 3일차 경유 지점

나카헤치 길에는 '오지(王子)'라고 부르는 작은 사당이 구간마다 놓여 있는데, 홋신몬오지는 그중에서도 혼구 타이샤로 내려가는 마지막 구간의 들머리로 알려진 곳이다. 실제로 이날 지난 길의 기록도 여기서부터가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다.

길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어렵지도, 쉽지도 않았다. 산길이니 오르내림은 당연히 있는데 사람을 지치게 하는 급경사는 기억에 없다. 숲이 깊어 공기가 좋았고, 피톤치드를 마시며 건강하게 걸었다는 느낌이 그날의 인상으로 남았다.

벌목한 비탈 위에 남은 한 그루 — 뒤로 곧게 선 삼나무 조림지와 파란 하늘

스탬프와 길 찾기 — 실제로 어땠나

걷기 전에 궁금했던 두 가지를 여기서 정리해 둔다.

스탬프는 어렵지 않았다. 코스 군데군데에 놓여 있고, 받아 둔 팸플릿에 위치가 잘 안내돼 있어서 찾느라 헤맨 기억이 없다. 스탬프를 모으는 게 목적이라면 따로 각오할 일은 아니다.

길은 두 군데쯤 헷갈렸다. 사흘을 통틀어 "어디로 가야 하지?" 하고 멈춘 지점이 두 번 있었다. 정확히 어느 지점이었는지는 적어 두지 않아 특정하지 못하지만, 전체를 두고 보면 표식은 충분한 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갈림길에서 한 번씩 멈춰 확인하는 습관은 필요하다.

11:17 — 산골 마을의 수양벚나무

오전 11시 17분, 숲을 빠져나와 집과 밭이 있는 마을 구간으로 들어섰다. 여기서 수양벚나무가 만개해 있었다.

활짝 핀 수양벚나무와 산골 마을 기와지붕 — 쿠마노 고도 3일차 오전 11시 17분

3월 말에 걸으면 이런 장면을 만난다. 벚꽃을 보려고 날짜를 맞춘 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꽃을 보며 걸었다. 다만 꽃 피는 시기는 해마다 차이가 크니 "3월 말이면 벚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11:54 — 멀리 거대한 도리이가 보였다

오전 11시 54분, 능선에서 숲이 열리며 분지가 내려다보였다. 그리고 강가 들판 한가운데에 거대한 도리이가 작게 보였다.

능선에서 내려다본 쿠마노 분지 — 강가 들판 한가운데 오유노하라 대도리이가 작게 보인다

이 순간이 셋째 날에서 가장 좋았다. 사흘을 걸어온 끝이 저기구나, 하고 눈으로 확인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과 쿠마노 고도가 서로 어떻게 다른지는 두 길을 비교한 글에 따로 적어 두었다.

12:18 — 혼구 타이샤 도착

목표는 오후 1~2시였는데 실제 도착은 낮 12시 18분이었다. 생각보다 한두 시간 빨랐다. 새벽에 나선 덕이 여기서 돌아온 셈이다.

쿠마노 혼구 타이샤 본전 — 삼나무 껍질로 이은 지붕이 나란히 선 경내

혼구 타이샤 본전은 삼나무 껍질로 지붕을 인 건물이 나란히 서 있는 구조다. 도리이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바로 이 마당이 나온다. 걸어서 도착하든 차로 오든 보는 건 같지만, 아침 내내 숲에 있다가 들어서면 확실히 다르게 보인다.

12:44 — 길가에 서 있던 산티아고 표지석

경내를 나와 걷다가 낮 12시 44분, 뜻밖의 물건을 만났다. 돌기둥에 산티아고 순례길의 노란 조개 표식이 박혀 있고, 아래에 "10.755 Km"라고 적혀 있었다.

쿠마노 고도 길가의 산티아고식 조개 표지석 — 자매길 협정의 흔적

스페인에서 780km를 걸으며 수없이 봤던 그 표식이 일본 산골에 똑같이 서 있는 걸 보니 기분이 묘했다. 두 길은 자매길 협정을 맺은 사이이고, 이 표지석은 그 흔적이다. 적힌 숫자가 무엇까지의 거리를 뜻하는지는 표지석에 설명이 없어 나도 모른다.

13:01 — 듀얼 필그림 인증

오후 1시 1분, 두 길을 모두 걸은 사람에게 주는 듀얼 필그림(Dual Pilgrim) 인증서를 받았다. 발급 날짜 칸에 손으로 "2026년 3월 28일"이라고 적혀 있다.

혼구 타이샤에서 받은 듀얼 필그림 인증서와 기념 핀 배지

인증서와 함께 조개와 야타가라스(세 발 까마귀)가 나란히 들어간 기념 핀 배지를 받았다. 겨울에 산티아고를 걷고 이듬해 봄에 쿠마노를 걸은 결과가 종이 한 장으로 손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발급 절차와 필요한 서류는 따로 정리해 두었으니, 두 길을 다 걸으실 계획이라면 듀얼 필그림 인증 방법 쪽을 보시는 게 빠르다.

13:08 — 늦은 점심

인증을 받고 7분 뒤,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메뉴판에 적혀 있던 가격은 이랬다.

쿠마노규 고기우동 1,500엔 등이 적힌 식당 메뉴판
쿠마노규 고기우동단품 1,100엔 / 밥 세트 1,500엔
덴푸라 우동단품 1,100엔 / 밥 세트 1,500엔
기츠네 우동단품 700엔 / 밥 세트 1,100엔
밥 세트 추가+400엔 (밥·작은 반찬·절임)

메뉴판에 적힌 그대로 옮긴 것이고 모두 세금 포함 가격이다. 2026년 3월 기준이므로 지금은 다를 수 있다. 가격 자체보다 참고가 될 만한 건, 아침부터 걸어온 사람이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이 혼구 주변에 있다는 점이다.

13:43 — 오유노하라 대도리이

오후 1시 43분, 아침에 능선에서 멀리 보였던 그 도리이 앞에 섰다. 오유노하라(大斎原), 혼구 타이샤의 옛 신사 터다.

오유노하라 대형 도리이 — 혼구 타이샤 옛 신사 터에 선 거대한 도리이

멀리서 작게 보이던 것이 가까이서 보니 산을 배경으로 하늘을 가릴 만큼 컸다. 아래쪽에 벚나무가 줄지어 피어 있어서 내가 간 날에는 도리이와 꽃이 함께 들어왔다. 혼구 타이샤 본전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라, 본전만 보고 돌아서면 아까운 곳이다.

18:05 — 다시 카와유로

저녁 6시 5분, 숙소가 있는 카와유 온천으로 돌아왔다. 새벽에 첫 사진을 찍은 바로 그 자리인데 하루가 통째로 지나 있었다.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 앞에 이런 안내판이 서 있었다.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고 붙여 둔 식당 안내판 — 메하리즈시 정식 1,000엔 등

적혀 있던 메뉴는 천연 은어 정식 2,000엔, 천연 장어덮밥 2,800엔, 쿠마노 명물 메하리즈시 정식 1,000엔, 산채 우동 정식 1,000엔, 야키니쿠 정식 1,200엔, 카레 800엔, 야키메시 800엔, 메하리즈시 단품 600엔이었다. 역시 2026년 3월 기준이다.

그런데 가격보다 중요한 건 따로 적혀 있었다. "お支払いは現金で — Cash only", 현금만 받는다는 안내다. 이 지역에서 버스 요금도 전액 현금으로 냈던 터라 새삼스럽지는 않았지만, 카드만 들고 들어오면 곤란해지는 곳이 분명히 있다. 산간 구간에 들어가기 전에 엔화 현금을 넉넉히 챙기시길 권한다.

조명을 받은 카와유 온천 마을의 밤 벚꽃

저녁 6시 36분, 강가에 조명을 받은 벚나무가 환하게 떠 있었다. 12시간을 걷고 돌아온 날의 마지막 장면으로는 과분했다.

정리 — 셋째 날을 숫자로

05:40카와유 온천 숙소 출발 (버스 시각에 맞춰 새벽 출발)
06:40숲길 (위치 기록 없음)
09:59홋신몬오지
11:17산골 마을, 수양벚나무
11:54능선에서 대도리이가 처음 보임
12:18혼구 타이샤 도착 (목표보다 1~2시간 빠름)
12:44산티아고 조개 표지석
13:01듀얼 필그림 인증서 발급
13:08점심
13:43오유노하라 대도리이
18:05카와유 온천 복귀 — 총 12시간 25분

셋째 날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다. 버스 시각 때문에 새벽에 나섰는데, 그 덕에 목표보다 일찍 도착해 오후가 통째로 남았다. 남은 오후에 오유노하라까지 걸어 본 게 이날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거점형으로 걸으실 계획이라면 전날 밤에 버스 시각을 반드시 확인하시고, 첫차에 맞춰 나설 각오를 하시는 편이 낫다. 숙소에서 트레일헤드까지 가는 길이 하루의 성패를 가른다. 사흘치 교통·숙소·식비를 합쳐 실제로 얼마가 들었는지는 쿠마노 고도 비용 총정리에 적어 두었다.

※ 본문의 시각은 모두 그날 찍은 사진의 촬영 시각 기준입니다. 음식 가격은 2026년 3월 당시 메뉴판에 적힌 금액이며, 버스 시각표·요금·영업 정보는 바뀔 수 있으니 방문 전 공식 안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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