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티아고 침낭 추천 기준 | 데카트론 10유로 침낭으로 걸은 후기
겨울 산티아고 침낭 추천 기준 | 데카트론 10유로 침낭으로 걸은 후기
겨울 산티아고 침낭을 고를 때 가장 헷갈리는 부분은 "알베르게에 담요가 있으니 얇은 걸로 충분하다"는 말과 "겨울이니 두꺼운 걸 가져가라"는 말이 동시에 돌아다닌다는 점이다. 나는 결국 데카트론에서 약 10유로에 산 얇은 면 침낭 하나로 겨울 프랑스길을 걸었다.
나는 2026년 2월 5일부터 3월 8일까지 32일 동안 생장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프랑스길 약 780km를 걸었다. 이 글에서는 그 32일 동안 실제로 덮고 잔 10유로 면 침낭이 어땠는지, 그리고 다시 겨울에 걷는다면 어떤 기준으로 침낭을 고를지를 정리했다.
침낭 없이 출발했다가 파리 데카트론에서 샀다
사실 나는 원래 침낭을 안 가져갔었다. 한국에서 짐을 쌀 때 아예 목록에서 뺐던 물건이다. 그러다 파리에서 생장피드포르로 가는 기차를 타기 전에 데카트론에 들러서 얇은 면 침낭을 하나 샀다. 가격은 약 10유로였다.
출발 직전에 산 물건치고는 32일 내내 쓰게 된 장비였다. 준비물 체크리스트에도 적었듯 이 침낭은 "잘 가져간 것" 쪽에 확실히 들어간다. 다만 겨울에 이 두께로 충분했느냐는 또 다른 이야기다.
겨울 알베르게의 난방과 담요는 복불복이었다
겨울 알베르게는 난방과 담요가 있는 곳도 있지만 없는 곳도 있었다. 이게 침낭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잘 곳을 미리 다 정해두고 걷는 게 아니라면, 담요가 없는 알베르게에 걸리는 밤이 오기 마련이다.
특히 Ave Fenix는 전기를 태양열로 돌려서 잘 때 매우 추웠다. 분위기와 사람으로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 알베르게지만, 잠자리의 온도만 놓고 보면 힘든 밤이었다. 그런 밤을 겪고 나서 내린 결론은 하나다. 얇은 면 침낭은 방한에는 너무 취약하다.
2월에서 3월 사이 프랑스길은 새벽과 저녁이 쌀쌀했고, 비가 오면 체감 기온이 크게 떨어졌다. 낮에 걸을 때의 추위는 옷으로 해결이 되지만, 잘 때의 추위는 침낭과 담요가 전부다. 겨울 시즌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2026년 겨울 산티아고 프랑스길 장단점에 따로 정리해 두었다.
가장 추웠던 밤 — 폰세바돈의 Domus Dei
32일 중 가장 추웠던 밤은 폰세바돈에 위치한 알베르게, Domus Dei Foncebadon이었다. 고도도 높았고 담요 위생도 안 좋아 보여서 결국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양말까지 신고 잤다.
담요가 있어도 상태에 따라 못 쓰는 경우가 있다는 걸 이때 알았다. "담요가 있으니 괜찮다"가 아니라 "담요를 못 쓸 수도 있다"를 기준으로 침낭을 골라야 한다는 뜻이다. 옷을 껴입고 자는 방법으로 그날 밤을 넘기긴 했지만, 다음 날 입을 옷을 밤새 깔고 자는 셈이라 좋은 해결책은 아니었다.
무게 2~300g, 부피는 확실한 장점
방한은 약했지만 휴대성만큼은 확실히 좋았다. 무게는 2~300g 언저리였고 부피도 크지 않았다. 나는 이 침낭을 항상 배낭 안쪽 맨 위 포지션에 넣고 다녔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꺼내는 물건이라 자리를 고정해두는 편이 편했다.
30L 배낭으로 걸었기 때문에 부피가 작다는 건 생각보다 큰 장점이었다. 침낭이 커지면 그만큼 다른 짐을 덜어내야 한다. 보온만 보고 침낭을 고르면 배낭 용량 계획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은 미리 감안하는 게 좋다.
다시 겨울에 걷는다면 어떤 침낭을 고를까
다시 겨울에 걷는다면 한국에서 좀 더 따뜻하고 가벼운 침낭을 준비할 것 같다. 현지에서 급하게 사는 것보다 출발 전에 보온력과 무게를 비교해보고 고르는 편이 낫다고 느꼈다. 반대로 다른 계절에 걷는다면 지금처럼 얇은 면 침낭을 가져갈 것 같다.
다만 어느 계절이든 침낭 자체를 빼는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알베르게 위생이 안 좋은 곳도 많아서 침낭은 필수라고 본다. 보온 때문이 아니라 내 몸과 침구 사이에 한 겹을 두기 위해서라도 챙겨야 하는 장비다.
정리하면 내가 생각하는 겨울 산티아고 침낭 기준은 세 가지다. 첫째, 담요가 없거나 못 쓸 수 있다는 전제로 보온력을 정할 것. 둘째, 무게와 부피가 배낭 용량 안에 들어오는지 확인할 것. 셋째, 보온과 별개로 위생 목적으로도 쓸 수 있는지 볼 것. 어디까지나 2월에서 3월 사이 프랑스길을 걸어본 내 경험을 기준으로 한 이야기이고, 걷는 시기와 구간, 추위를 타는 정도에 따라 답은 달라질 수 있다.
침낭 외에 실제로 필요했던 것과 필요 없었던 장비는 준비물 총정리 2편에 모아두었다. 겨울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면 함께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