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질문 모음 1편 | 댓글로 받은 7가지에 실제 기록으로 답했다

블로그에 달리는 산티아고 질문이 쌓여서, 자주 겹치는 것들을 한 번에 모아 답하기로 했다. 댓글로 받은 질문은 대부분 "이걸 챙겨야 하나요", "이게 가능한가요" 같은 결정 직전의 질문이었다. 각각에 짧게 답을 달고, 더 긴 이야기는 따로 써 둔 글로 연결해 둔다.

먼저 답변의 기준을 밝힌다. 나는 2026년 2월 5일부터 3월 8일까지 32일간 겨울 프랑스길 780km를 걸었다. 그래서 아래 답은 전부 "겨울에 전 구간을 걸은 사람"의 기준이다. 계절이 다르거나 일부 구간만 걷는 경우엔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 수 있고, 내가 겪어보지 않은 건 겪어보지 않았다고 쓸 것이다. 질문을 주신 분들의 닉네임은 밝히지 않았다.

Q1. 알베르게를 닷새만 쓸 건데 침낭이 꼭 필요할까요? 부피가 커서 고민입니다

부피 이야기부터 하면, 내가 쓴 건 데카트론에서 약 10유로에 산 얇은 면 침낭이었다. 무게는 2~300g 언저리였고 부피도 크지 않아서 배낭 안쪽 맨 위에 항상 같은 자리에 넣고 다녔다. 솔직히 말하면 출발할 때는 침낭을 아예 안 가져갔다. 파리에서 생장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전에 데카트론에 들러 그때 산 것이다.

그래서 "부피가 커서 고민"이라면 질문의 방향을 조금 바꿔 보시는 걸 권한다. 두꺼운 침낭을 가져갈지 말지가 아니라, 얇은 면 침낭 한 겹을 넣을지의 문제다. 면 침낭은 부피 고민을 할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알베르게 도미토리 내부 — 2층 철제 침대가 늘어선 복도

필요한지 아닌지로 답하면, 나는 있는 쪽이다. 이유는 방한이 아니라 위생이었다. 겨울 알베르게는 난방과 담요가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었는데, 담요 위생이 좋아 보이지 않는 곳이 꽤 있었다. 그런 밤에 면 침낭 한 겹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체감이 달랐다.

대신 분명히 해 둘 것이 있다. 면 침낭은 방한에는 너무 취약했다. 전기를 태양열로 돌리던 Ave Fénix에서는 잘 때 매우 추웠고, 폰세바돈의 Domus Dei Foncebadón은 고도도 높고 담요 위생도 안 좋아 보여서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양말까지 신고 잤다. 그날 밤에 면 침낭이 해 준 일은 없었다. 겨울에 걸으신다면 한국에서 조금 더 따뜻하고 가벼운 침낭을 준비하는 쪽을, 다른 계절이라면 면 침낭을 권한다. 더 자세한 기준은 겨울 산티아고 침낭 추천 기준에 따로 써 두었다.

폰세바돈 구간의 추위와 눈길 — 겨울 프랑스길에서 가장 추웠던 밤을 보낸 구간

Q2. 짐 최소화가 마음 같지 않습니다. 열흘 300km를 걸을 예정인데요

이 질문이 가장 많이 들어온다. 내가 실제로 메고 간 것을 수치로 적는 게 제일 도움이 될 것 같다.

배낭노스페이스 30L NM2TR13B (122,550원)
인천 출발 시 무게공항 수하물 저울에 6.5kg
상의기능성 반팔 3벌, 긴팔 3벌
하의바지 3벌
양말·속옷양말 5벌, 속옷 5벌
실제 운용옷 2~3벌을 돌려 입으며 빨고 말리는 생활
공항 수하물 저울에 표시된 6.5kg — 인천 출발 시 배낭 무게

32일을 걸을 짐이 6.5kg이었다. 열흘 300km라면 챙길 옷 수는 더 줄여도 된다. 중요한 건 며칠치 옷을 가져가느냐가 아니라 며칠에 한 번 빨 수 있느냐로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나는 32일 중 25일 정도를 손빨래했다. 양말·속옷이 1~2개 남을 때, 알베르게에 널 자리가 있으면 그때 빨았다.

완주 내내 사용한 노스페이스 30L NM2TR13B 화이트 배낭

참고로 빨래 비누는 가져갔는데 잘 쓰지 않게 됐다. 한번 쓰면 미끌미끌해져서 처치가 곤란했고, 결국 바디워시로 빨기도 했다. 배낭 용량 이야기는 30L 배낭으로 충분할까?, 빨래 쪽은 32일 중 25일은 손빨래였다에 더 썼다.

Q3. 스틱 없이 걸어도 괜찮을까요?

나는 스틱을 아예 안 챙겨가고 780km를 완주했다. 사용법도 모르고 가져가면 번거로운 짐이 될 것 같아서였다. 결과만 보면 없어도 걸을 수 있다는 쪽의 증거다.

다만 솔직하게 덧붙일 것이 있다. 아쉬웠던 구간이 분명히 있었다. 오르막이 아니라 내리막이었다. 오 세브레이로 내리막처럼 발보다 낮은 땅을 계속 밟고 내려갈 때는 무릎에 무리가 가고 발 전체가 쉽게 피로해졌다. 그때는 스틱이 있었으면 했다.

언덕 아래 마을로 내려가는 길과 걸어가는 순례자 뒷모습

스틱 없이 걷는 동안 쓴 방법은 단순했다. 오르막은 갈지자로 걸었고, 내리막은 몸에 힘을 빼고 최대한 무릎에 무리가 안 가게 미끄러지듯 걸었다. 통증은 생각만큼 크지 않았다. 다만 초반 5~10일차에는 오래 걷는 게 쌓여서 허벅지와 다리 전체 근육이 하체 운동을 한 뒤처럼 무거웠다.

길에서 체감한 비율은 대략 8대 2로 스틱을 쓰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답은 이렇다. 없어도 완주는 된다. 그런데 나는 다음에 간다면 접히고 가벼운 걸 챙길 생각이다. 몸은 소모품에 가깝고, 지금 아끼면 나중에 덜 고생할 것 같아서다. 상세한 이야기는 스틱 없이 780km 걸은 후기에 있다.

Q4. 현금은 얼마나 들고 가야 하나요?

출발 전에 따로 환전은 하지 않았고, 공항에서 수령하는 서비스로 100유로만 들고 떠났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에는 보통 200~300유로를 현금으로 보유했고, 쉬는 날 대도시에서 그만큼씩 다시 뽑았다.

작은 마을의 돌담 골목 — 이런 곳의 가게는 현금만 받는 경우가 있었다

왜 현금이 필요하냐면, 5일에 하루 꼴로 현금만 받는 곳을 만났다. 도네이션함만 있는 곳도 있고 아예 현금만 받는 가게도 꽤 있었다. 알베르게 요금 자체는 비싸지 않아서(체감 5~20유로) 그런 곳에서는 그냥 현금으로 냈다.

카드는 신한 SOL트래블과 트래블월렛 두 장을 가져갔다. 동유럽을 돌던 중 SOL트래블 카드가 ATM에 먹혀서 그 뒤로는 트래블월렛 한 장으로 다녔다. 그 일 이후 내가 정한 규칙은 두 개다. 인출은 반드시 대형은행 ATM에서, 그리고 은행이 영업 중인 시간에만. 길거리 단독 ATM은 수수료도 높고, 기계가 카드를 먹으면 도움 받을 사람이 없다. 사건 전말은 부다페스트 ATM이 카드를 먹었을 때, 결제 전반은 현금·카드 사용법에 정리해 두었다.

다시 간다면 똑같이 할 것 같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곳들은 아직 옛날 방식을 따르는 데가 많아서,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현금을 들고 다니는 게 맞다고 본다. 다만 카드 수수료와 ATM 정책은 바뀌니, 쓰실 카드 조건은 출발 전에 발급사 공식 안내로 확인하시는 게 좋다.

Q5. 하루 40km, 정말 걸을 수 있나요?

마지막 날 아르수아에서 산티아고까지 약 40km를 하루에 걸었다는 글을 보고 들어온 질문이다. 가능했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평소 일평균약 27km (32일 평균)
체감 보행 속도평지 기준 약 5~5.5km/h
그날 출발새벽 4시 30분
도착오후 3시쯤
걷는 방식50분 걷고 10분 쉬기 반복
가로등만 켜진 새벽 도시 거리 — 40km 걷던 날 이른 출발

중요한 건 그게 31일을 걸은 몸으로 한 마지막 날이었다는 점이다. 평소 27km를 걷던 다리에 13km를 더한 것이지, 처음부터 40km를 걷는 일정이 아니었다. 그날도 피로가 누적돼 어깨와 발이 아팠다. 새벽에 출발한 2시간은 거의 숲길이라 매우 어두워서 헤드랜턴과 휴대폰 플래시를 번갈아 썼다. 새벽엔 꽤 추웠지만 점차 따뜻해져 11시 이후로는 반팔만 입고 걸었다.

그리고 내가 그날 40km를 택한 이유는 체력 증명이 아니었다. 전날 아르수아 숙소에서 함께 걷던 친구와 "마지막날은 빡세게 장식해보자"고 정한 것이고, 귀국 일정과 바르셀로나 일정 때문에 강행군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대성당 앞에 누워 여유를 좀 누리고 싶어서 새벽 출발을 택한 것도 있다. 그러니 이 숫자를 목표로 삼지는 않으셨으면 한다. 그날의 기록은 아르수아에서 산티아고 40km 하루 완주에 시간 단위로 적어 두었다.

Q6. 가을에 걸으려는데 날씨가 어떤가요 — 이건 제가 답할 수 없습니다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에 걸으려는데 날씨가 어떤지 묻는 질문을 받았다. 이 질문에는 답을 드릴 수 없다. 나는 2월에서 3월, 겨울길만 걸었다. 가을 프랑스길은 가 본 적이 없고, 걸어보지 않은 계절의 길을 걸어본 척 쓰지는 않겠다.

생장피드포르에서 발카를로스 방향으로 이어지는 겨울 프랑스길 풍경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겨울 쪽이다. 2~3월에는 새벽과 저녁이 쌀쌀했고, 비가 오면 체감 기온이 크게 떨어졌다. 비수기라 빈 침대는 비교적 있었지만 문을 닫은 알베르게가 많았다. 가을은 이 두 가지가 다를 것이다. 성수기에 더 가까우니 숙소는 열려 있는 대신 자리 경쟁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건 내 경험이 아니라 추론이라서, 가을에 걸은 분들의 기록을 함께 찾아보시는 게 정확하다.

Q7. 순례길 전에 유럽 도시를 육로로 돌려고 합니다. 가능할까요?

가능하다. 나도 그렇게 했다. 2026년 1월 21일 인천을 떠나 중국에서 경유한 뒤, 생장에 들어가기까지 15일 동안 도시들을 육로로 이었다.

1/22~부다페스트 2박 3일
1/24~프라하 2박 3일
1/26~비엔나 2박 3일
1/28~스위스 체르마트 2박 3일
1/30밀라노 1박
1/31~니스 2박 3일
2/2~파리 2박 3일
2/4 저녁생장으로 출발 → 2/5 순례 시작
가로수가 늘어선 아스팔트 길을 혼자 걷는 순례자 뒷모습

이동 요금은 구간마다 꽤 달랐다. 프라하에서 비엔나는 37유로, 비엔나에서 취리히는 139,000원, 취리히에서 체르마트는 52프랑이었다. 이 15일 구간에 쓴 돈은 항공·eSIM·도시 간 이동·숙소 12박·현지 비용을 합쳐 약 385만원이었다. 예매는 ÖBB Tickets, Trainline, Omio, SBB Mobile 같은 앱을 섞어 썼고 숙박은 부킹닷컴·트립닷컴·에어비앤비를 썼다. 요금과 시간표는 시즌마다 바뀌니 실제 금액은 각 앱에서 직접 확인하셔야 한다.

조심하실 점 하나.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짐이 순례 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게 좋다. 나는 결국 침낭을 파리 데카트론에서 샀는데, 뒤집어 말하면 순례 장비를 유럽 도시 구간에서 보충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짐을 미리 완벽하게 꾸릴 필요는 없었다. 전체 경비는 7주 유럽여행 경비 총정리에 날짜별로 정리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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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계속 받습니다

이 글은 1편이다. 모아 놓고 보니 답할 수 있는 질문과 답할 수 없는 질문이 뚜렷하게 갈렸다. 내가 숫자로 적어 둔 것(짐 무게, 현금, 거리, 요금)은 그대로 드릴 수 있고, 계절이나 조건이 다른 질문은 추측이 된다. 그래서 두 번째 유형은 솔직히 모른다고 쓰는 쪽을 택했다.

길가 풀밭에 배낭을 벗어 두고 쉬는 순간 — 돌담과 흐린 하늘

질문이 있으면 이 글이나 관련 글에 댓글로 남겨 주시면 된다. 모이면 2편으로 다시 모으겠다. 전체 기록을 한 번에 보고 싶으시면 산티아고 순례길 기록 전체 목차에서 준비부터 완주까지 순서대로 찾아보실 수 있다.

기준 안내 — 이 글의 모든 경험·수치는 2026년 2~3월 겨울 프랑스길 32일 완주 기록이다. 알베르게 요금·교통 요금·카드 수수료 등 변하는 정보는 출발 전 각 공식 채널에서 다시 확인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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